미겔 고미쉬와 모린 파젠데이로가 공동으로 연출한 수수하고 지극히 사적이며 유머가 넘치는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마법 같은 영화다. '트스거오'를 거꾸로 발음하면 〈더 오거스트 다이어리〉. 21일간의 이야기가 역순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8월 포르투갈에서 촬영됐다. 모든 스태프가 PCR 테스트를 받는 모습, 서로의 역을 바꿔가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리허설, 썩은 과일이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모습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두 감독은 스태프가 갇혀 지내는 집이나 정원을 아주 부드럽고 평화로운 세상처럼 카메라에 담아낸다. 나란히 자연을 관조하고 빛의 조각들을 포착하거나 배우들의 춤에 넋을 잃는 장면들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범세계적인 대재앙 속에서도 작고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직은 가능하다.
(서승희/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